명예는 얻되 명예심은 버려라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잠 22:1)하신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져”(수 6:27). 가나안 천지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다.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도에 퍼지면서(에 9:4) 페르사 제국에 있는 유대인은 죄여오는 죽음의 날을 벗어나 활개 치며 사는 은혜를 누렸다.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대하 9:1) 천하 열 왕이 성지 예루살렘에 벌 떼처럼 몰려와 하나님께 감탄하고 돌아갔다. 다윗도 적군을 물리친 후 명예를 얻어(삼하 18:13) 견강한 국가를 세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할 것이라(습 3:10) 약속하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온 백성에게 칭송 받는(행 2:47) 모범 국민 되시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온 몸에 존경받는 성직자 교우들이 될 때 하나님은 엄청나게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 자신도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심으로 명성을 얻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한다(단 9:15).참으로 좋은 것이 명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을 살펴보면 존경받는 명성은 찾기 힘들고 명예심에 도취한 소인배들이 진흙탕 싸움만을 계속하고 있다. 감독이나 총회장 혹은 이사장 선거에 돈이 돋보이게 개입되고 이권 붙은 자리 쟁취를 위해서는 패거리들이 조성되고 명예심의 독초들이 곳곳에 심겨서 기독교 전반에 사막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악인일수록 명예 될 것들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려고 한다. 압살롬은 비석을 세웠고(삼하 18:18) 사울왕은 기념비를 세웠다(삼상 15:12). 학자나 교수는 학위가 생명일 수 있다. 박학한 지식의 창고를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수적 학위 획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가 흐르는 예배 강단에는 천재보다는 사도가 서야 한다. 목사들이 학위에 혈안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에 굶주려서 인가? 지식은 학위 취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독서와 연구가 더 필수적이다.
예배강단에 박사 가운을 입고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를 알고 싶다. 교회 성장 비결로 목회학 박사 받은 사람이 한 도성에 수십 명이 되는데 왜 교회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그 학위로 하나님께 어떤 영광을 돌렸는가. 영적으로 거룩해 졌는가. 교회가 생기를 얻었는가. 공부 기간 동안에 교회는 침체되고 교인들의 거룩한 헌금을 지식에 투자한 그 대가를 뽑고 있는가. 그 기간 목회를 소홀히 한 죄를 회개했는가. 명예심으로 얻은 것은 쓰레기다. 함양 미달의 값싼 학위까지도 머리에 얹히게 되는 의도는 분명 고약한 명예심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는가. 학위 소지자를 목사 청빙 조건으로 붙인 교회들도 있다 하니 강단에서 참 선지자를 몰아 낼 생각인가? 감독 기간이 지나고서 새 감독이 취임했고 새 총회장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감독님, 총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기독교의 타락 아닌가. 집사가 올라가서 권사가 되고 더 높이 장로가 된다는 교회안의 직분계급도 철저히 부서져야 한다.
수석장로 수석 집사 명칭도 없어져야 한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옷 입으셨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말씀 하셨다. 높아지는 것은 동이나 서에서 오지 않고 하나님만이 높여주신다 했다(시 75:7). 스스로 높임은 사기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신다(롬 11:20). 겸손만이 존귀의 앞잡이라 하신다(잠 15:33). 만물의 정가표가 정확히 붙여질 날이 서서히 다가온다. 예수님이 달아보시는 저울에 올라 눈금보고 웃을 날을 기다려야 한다. 오직 예수님에게 기쁨이 되고 예수님의 영예가 되도록 해야 한다.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