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선교사인가 일꾼선교사인가!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마르다의 가슴은 예수님을 위한 식사 대접으로 흥분되었다. 좀더 맛있게, 좀더 풍성히 준비하여 예수님을 흡족케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조여 오는데 손볼 일은 잔뜩 쌓여있다. 눈치도 없는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꿇어 앉아 달콤한 말씀에 푹 빠져 있기만 한다. 드디어 분노가 폭발되었다. 아니꼬운 마리아에게는 말도 걸기 싫었다. 예수님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동생이 나를 돕도록 그만 부엌으로 보내 주셔야지요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마리아의 손을 드신다. 단 몇 가지만이라도 좋다. 한 가지도 좋다 하시면서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눅11:42)라고 말씀하셨다. 임금님 보석 선물은 받을 생각은 못하고 제가 잘 먹는 고구마를 임금님도 잘 드시는 줄 알고 12가지 요리 방법을 동원하여 배부른 왕께 상 차려 드리는 격이다. 마르다는 부엌 일감에 포로가 된 셈이다.
반면 마리아는 빈 공간 자기 영혼에 주님의 보화로 차곡차곡 쌓이는 실속을 차렸다. 바짝 다가앉아 말씀을 경청했다. 드디어 놓치지 못할 섬김의 시간이 포착 되자 그녀는 비싼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여자의 영광인 머리를 지체 없이 풀어 그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씻어 드렸다. 그 값은 무려 300데나리온이었다(요12:5). 예수님은 “나의 장례날에 쓸려고 예비된 것”(요12:7)이라 하시며 만족해 하셨다. 십자가 사건에 가장 먼저 동참한 여인이 된 것이다.
그들의 오빠 나사로는 아무리 꼼꼼히 살펴보아도 봉사한 흔적이 전혀 없다. 마르다가 예수님과 상당히 많은 대화를 하고(요11:21-27) 마리아도 간단하지만 몇 마디 나눈 반면에(요11:32) 나사로는 오직 침묵이다. 한 일이 있다면 병들었다가 죽은 일이다. 무덤 속에 시체로 들어가 4일이나 머물러 썩어 냄새까지 풍겼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다는 선포를 준비하기 위해 부활 과목 시간에 실험물질이 되어 부활의 권세를 증거토록 한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그 파장이 얼마나 컸던가!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는”(요12:11)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당황한 대제사장은 급히 살생부(殺生簿)를 만들어 예수와 나사로를 요주의 인물로 점찍게 되었다(요11:10). 영원 영원히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라는 부활 복음이 땅끝까지 외치게 될 것을 사탄이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육신의 배를 채워드리는 인정 넘치는 고마운 일을 했다면(예수님께 만족을 드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사로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등용되는 기념할만한 일꾼이 된 셈이다.
일꾼은 주인의 일을 하는 자다. 주인의 영광을 위해서만 생존 이유가 있다. 그러다가 주인을 위해 죽는 자다. 주님 생각을 잊어버릴 정도로 일감에만 쫓겨 사는 어리석은 일꾼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영성도 감사도 사랑도 웃음도 상실한 채. 현재 일이 과연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있는 일인가? 일감선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7년을 수일같이 여긴(창29:20)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흥분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를 웅장하고 튼튼하게 건설하는 주님의 참 일꾼이 되어야 한다. 할렐루야!